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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여름

몽골의 여름은 참 짧다. 여름이라고 생각하면 어느새 가을을 건너뛰어 겨울로 접어든다. 기간으로 말하자면 5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를 여름으로 보면 된다. 왜냐하면 국가가 이 기간에만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방을 하지 않는 기간을 여름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눈이 내린다. 5월 말이나 9월 초에도 가끔 10cm 이상씩 눈이 쌓인다. 눈이 내려 추위가 닥쳐와 있어도 몽골인은 여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여름 개념과는 크게 다르다. 1990년대 중반 서울은 영상 40도를 넘어 전국이 불볕더위일 때도 몽골의 기온은 밤이면 영상 4~5도로 내려가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당시 몽골을 방문했던 20여 명의 친지들은 난로를 피우고 전기장판을 깔고 자야만 했다.

 

 하지만 낮에는 영상 30도에 가까운 기온이어서 몽골의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몽골인은 물론이고 외국 관광객들도 주로 여름에만 몰린다. 특히 나담을 전후한 7월 한 달이 몽골 관광의 절정이다. 8월에도 관광객이 몰려는 오지만 몽골인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다. 가을 준비로 일손이 달려 눈 코 뜰 새가 없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몽골의 전통축제와 초원관광을 즐기려는 외국인이 몰려와 모든 호텔이 만원을 이룬다. 특급 호텔은 물론 허름한 여관에서도 빈 방 잡기가 쉽지 않다. 덩달아 비행기표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국제선이라야 중국 북경, 내몽고 흐흐호트, 러시아 모스크바, 브리아트,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그리고 서울을 잇는 항공편이 고작이다. 몽골 관문 보안트 오하 공항에는 보잉 747 등 대형기가 내릴 수는 있지만 승객이 일정치 않아 운항을 꺼려 좌석수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몽골 국립 여행사 ‘줄친'조차도 좌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무렵에는 외환 부족으로 고민하는 몽골정부도 조금은 풍성한 외환 사정을 즐긴다. 달러 환율이 거울의 달러 궁핍기보다 10~20% 하락하고 시중의 달러 유통량이 늘어난다. 외교관 상점 앞이나 시장 부근의 암달러상들도 배짱을 부리기 일쑤다. 조금이라도 훼손되거나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발행 연도가 오래 된 1970~80년대의 달러는 환전해 주지도 않는다. 여행자의 증가로 관광안내업을 하는 사람들도 풍성한 여름을 보낸다.

 

 모든 여행객은 우선 몽골의 하늘을 보고 놀란다. 끝없이 파란 하늘을 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몽골인은 “뭉크 텡그린”이라며 몽골 여행의 진수라고 한다. 끝없이 푸른 초원도 외국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사방이 전부 녹색이다. 손님을 후대하는 순박한 몽골인의 사람 됨됨이에 더더욱 감격한다.

외국인이 주로 찾는 여행지로는 고비 지방, 흡스골 호수, 몽골의 옛 수도 하라호름 그리고 테럴지와 만쉬르 휴양지 등이다. 서부의 바양을기 지방과 동몽골 지방은 특이한 풍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외국 관광객이 방문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교통편도 불편하다.

 

고비 지방은 반사막 기후 지역의 특색을 구경할 수 있어 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몽골 국토의 22%가 고비 지대이다.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덥고 겨울에는 뼈가 시리도록 춥다. 봄에는 그 악명 높은 모래바람이 휩쓸고 지나간다. 울란바토르 공항 대합실에는 고비 지방을 보지 않고는 몽골을 말하지 말라는 관광안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운반과 식용 고기로 사육되는 쌍봉낙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비 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

고비는 미개척의 공룡 서식지였던 곳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공룡의 각종 화석이 발견되고 있어 서구 학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홉스골 호수는 몽골 북부지방에 자리잡우 천혜의 관광지이다. 넓이만도 2,760km가 된다. 흡스골이 자리한 아이막은 이름을 아예 흡스골로 할 만큼 거대하다. 울창한 원시림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호수는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와 함께 이 일대 기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므릉이라는 도시까지 비행기로 이동, 그곳에서 버스나 자동차편으로 4~5시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다.

 

 

하라호름은 몽골이 원 제국을 건설하기 이전 수도로 사용했던 작은 성이다. 사방 400m 성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는 당시의 대형 겔터와 음식을 만들던 솥 등이 남아 있다. 성안의 라마 사원에서는 승려들의 독경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성 뒤편의 대형 돌거북상은 몽골인의 장수 기원 의사를 나타낸다. 성에서 1km쯤 떨어진 앞산 계곡에는 남근상이 가운데가 부러진 채 계곡을 향해 누워 있다.

 

 울란바토르 동남쪽에 위치한 만쉬르에는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서구 학자들이 자주 찾는다. 테럴지는 자연환경이 뛰어난 국립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다. 외국인은 물론 몽골인도 즐겨 찾는다. 서부 및 동부지방은 특별한 계획 없이 찾아가기가 힘든 지역으로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몽골인도 모든 일을 전폐하고 여행길에 나선다. 고향을 찾는 사람

이 급증, 울란바토르에서 3, 4개월씩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값싼 운임의 교통편을 이용하느라 대부분 고향으로 가는 차편이 있으면 그 차에 편승한다. 심한 경우 화물차 짐칸에 타고 가며 1주일 이상을 차 안에서 취사를 하기도 한다. 먼 경우 2천 km가 넘기도 한다. 하지만 고향을 찾아간다는 부푼 마음으로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고향을 방문할 때는 우리가 추석이나 설에 선물꾸러미를 안고 고향에 가듯 울란바토르에서 구입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국토가 워낙 넓어 항공 여행업이 의외로 잘 발달돼 있지만 이용은 어려운 편이다. 요금이 비싸 일반인은 이용하기 힘들다. 여름이면 비행기를 이용한 고향 방문 이야기가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될 정도다.

고향에 서 돌아올 때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한 보따리 싸 가지고 상경한다. 특산물이 없으면 고기나 유제품이라도 들고 온다. 울란바토르에 와선 고향에 못 간 동향인에게 고기와 유제품을 한 덩어리씩 나눠준다.

 

 몽골인은 고기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맛보는 것에 취해서 한동안 고향쪽 하늘을 쳐다본다. 고기와 유제품에서 고향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을 이들에게서 실감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몽골인의 고향 생각은 남다르다. 넓은 초원에서 살아온 그들은 아성에 젖어 고향을 쉽게 잊지 못한다. 고향에서 날아온 까마귀조차 반갑다는 말처럼 고향을 지나 만 온 사람에게서도 고향 소식을 듣고 싶어 한다.어한다.

 

 늘 외롭게 살아온 그들이라 인정과 소식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고향으로 가거나 도시로 가는 사람들은 늘 우편배달 부역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소식을 전해 달라는 고향사람들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우편제도가 잘 발달되지 않은 결과이기는 해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넓은 초원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여름 휴양지도 잘 발달돼 있다. 공산주의 시절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산천 경계가 수려한 곳에는 휴양지를 마련해 놓고 있다. 개방 이후 유지 보수가 힘들어 낡은 곳이 대부분이나 그래도 많은 곳이 여름이면 휴양객으로 붐빈다. 일부 신흥 부자들은 넓은 땅을 차지해 여름 한두 달을 이곳에서 보낸다.

이런 까닭에 여름이면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전부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편안한 집을 두고 야외로 나가 천막집에서 자거나 노숙을 즐겨한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야성과 진취적인 정신을 되살리고 온다는 것이다. 몽골인이 연례행사처럼 야외로 나가는 커다란 이유라고 설명한다. 외국인의 눈에는 그러나 유목민의 방랑과 거친 자연과의 투쟁 습성이 몸에 밴 결과처럼만 여겨진다. 달리 생각할 것이 없다.

학생들의 여름방학도 우리와는 판이하다. 초등학교는 5월 15일이면 여름방학을 시작해 9월 10일이나 돼야 겨우 개학한다. 여름을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긴 시간을 방학한다. 가족에게서 배우라는 지침이다. 그렇지만 실제 목적은 우리나라 농촌의 농번기 방학과 의미가 비슷하다. 몽골 초등학생 정도면 200~300마리 양 떼는 충분히 돌볼 수 있다. 그리고 말 젖도 짤 수 있다. 몽골인의 주 식량원인 양을 돌보고 말 젖을 짤 수 있는 기간이 여름 한 철인데 이를 놓치면 그다음

해까지 어렵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름방학이 매우 길다. 초등학생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학생들도 여름 농촌 일손 돕기에 동원된다. 공산주의 시절처럼 전원 동원되는 것은 면했지만 아직도 많은 학교가 이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생산성을 배가하기 위한 배려다.

 

 한편 여름철 도시의 관공서, 기업 등은 일손이 모자라 쩔쩔맨다. 많은 근로자들이 여행을 떠나 일손을 구하기가 어렵다. 공산주의 시절 법으로 정해진 휴가 일수를 다 찾아 쉬려는 근로자들이 많은 것이 이유다. 여름 한 철 장사로 1년을 먹고살아야 할 판인 호텔업계도 일손이 모자라 안달복달한다. 휴가 간 종업원 일손을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실업자야 있지만 고용 숫자를 늘리면 비수기에 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고민한다. 파산을 우려해 잉여인력을 만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몽골의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며 가을·겨울·봄을 위한 식량 비축기간이다.

 

 시골로 나가면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에델바이스가 몽골이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 고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한다. 여름은 아이들에게는 뺄 수 없는 성장과 경험의 계절이다. 야외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즐길 시간이 너무 짧아 아이들에게는 여름날이 아쉽기만 하다.

 

 여름 골목길에는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놀이와 유사하다. 두 패로 나누어 줄을 넘고 손으로 땅을 집고 거꾸로 넘기도 한다.

 

 사방치기는 우리나라의 형태와 다르나 하는 방법은 같다. 납작한 돌을 던져 놓고 한 발을 들고 다른 발로 차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놀이다. 돌이 정해진 순서를 벗어나거나 밖으로 나가면 순서가 바뀐다. 먼저 끝까지 마치는 사람이 우승한다. 골목이나 아파트 광장에 가면 분필로 바닥에 금을 그어 놓은 것이 자주 보인다. 아이들이 사방치기를 하고 돌아간 흔적이다.

 

 

 초원에서는 사내들이 제기차기를 한다. 양가죽이나 쇠가죽에 돌이나 쇠 도막을 넣고 묶은 것을 발로 차며 논다. 횟수 많이 차기, 양발 차기, 높이차기 등은 우리나라에서 하는 방법과 같다. 제기차기와 유사한 것으로 가축의 오줌보 또는 깡통 같은 것을 발로 차며 노는 것도 종종 눈에 띈다.

 

 말을 타고 하는 놀이도 많다. 달리기는 흔해 놀이로 치지 않으며, 말 위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놀이가 성행한다. 배구공, 농구공 등 구기가 도입되면서 초원에서 뛰노는 아이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