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은 겨울을 ‘여승 여스'라고 부른다. 9일씩 9번의 추위 즉 81일간의 혹한이라는 말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봄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멀고 단지 희망이 담긴 숫자의 나열이다.
너무 추워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한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3이라는 숫자를 써서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 근간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의 기후적인 요소도 들어 있다. 희망을 담아 추위의 공포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다.
몽골의 겨울은 지독하게도 춥다. 한겨울 울란바토르의 추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한밤중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추위가 계속될 때면 땅도 하늘도 얼고 인간의 사랑마저 얼어붙는다. 겨울에는 모든 것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추위를 기록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온도계에서도 몽골의 추위를 감지할 수 있다. 온도계는 몽골의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필수에 가까운 준비물이다. 그래서 가을이 시작되면 러시아나 독일 온도계가시장에 많이 쏟아져 나온다. 몽골인들은 온도계를 설치해야 겨우살이 준비가 다 끝났다고들 말한다.
웬만한 몽골인 가정에서는 실내에서 잘 보이는 창 밖에 온도계가 고정되어 있다. 우리의 온도계가 주로 걸어 놓도록 되어 있는 데 비해 몽골 시장에서 팔리는 온도계는 아예 고정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다. 아래 위 두 곳을 플라스틱으로 감싸고 못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에 못을 쳐 고정시켜 놓고 틈나면 들여다보면서 일과를 계획하는 것이 몽골인들의 겨울 삶이다.
온도계의 눈금도 몽골 것과 우리 것은 차이가 난다. 우리 나라 것은 영하 20도 내외에서 영상 40도 정도까지 눈금이 표시돼 있다. 영상의 날씨를 주로 측정하도록 고안된 것인데, 그래도 불편 없이 온도계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몽골 온도계는 영하 5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눈금이 그려져 있다. 편차가 100도가 된다. 그 가운데서도 영하의 기온 측정에 주안점이 주어져 있다. 한겨울 밤 온도계를 들여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간 온도계가 추위에
얼어 터질 듯이 위태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온이 내려간 날 밤 밖에서 하늘의 별을 보면 그 빛도 얼어붙은 듯 떨려 보인다. 사람의 눈에서 나오는 열기가 아지랑이 효과를 일으켜 별빛이 떨려 보이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눈에 눈물이 고여 그렁그렁해진다. 참 힘든 겨울나기를 경험했다.
겨울의 추억이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추위가 몰아쳐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뿐이다. 그 추운 가운데서도 오직 살아 움직이는 것은 느릿느릿 먹이를 찾는 양떼뿐이다. 양 떼는 주둥이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의 추위에서도 초원의 건초를 찾아 옮겨다니며 계속 뜯어먹는다. 눈이 쌓여 있으면 발굽과 주둥이로 해쳐가며 먹이를 찾는다. 참 끈질긴 생명력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잠깐 삼한사온에 대해 언급했지만 몽골인은 이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3일간의 따뜻함을 그리며 삼한사온을 반기나, 몽골인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몽골인은 오히려 4한을 은근히 기대한다. 삼일간 기온이 올라가 이상난동이 되는 것을 몽골인은 되레 두려워한다. 몽골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심지어는 각 사회단체조차도 겨울의 이상난동을 가장 염려한다. 이상난동으로 겨울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면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재해를 선포할 만
큼 비상 상태가 된다.
눈이 녹아 몽땅 흘러버리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고 얼어붙으면 가축의 먹을 것이 모두 없어져 가축이 굶어 죽는다. 눈을 헤집고 찾아먹던 풀을 뜯어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들판에 가축의 시체가 즐비하다. 겨울이라 가축을 묻을 곳도 없고 봄이 될 때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수밖에 없다. 가축의 시체가 썩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어도 죽은 고기는 먹지 않는 몽골인의 습관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1993년 초반 폭설과 함께 이런 이상고온이 발생, 30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있다. 당시 우리 정부와 적십자사도 몽골에 구호품을 보내는 등 전 세계가 몽골 돕기에 나섰던 일이 있다.
여승 여사는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발 치르 3여스(시작), 두번째가 이데르 3여스(한창때), 마지막으로 흑싱 3여스(늙은)이다. 이들 3단계 여스는 다시 각각 3여스로 나뉜다. 여승 여스는 매년 12월 22일 시작하여 다음 해 3월 11일 끝이 난다.
9일씩 계속되는 추위의 이름도 특이하다.
① 얇은 옷을 입으면 떠는 추위'
12월 22일부터 12월 30일까지다. 동지 다음 날이나 동지부터 시작되는 추위이다. 우리는 통상 12월 1일부터 겨울이라고 말하는데 몽골인은 이 때를 늦은 가을로 간주한다. 추위의 개념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셈이다.
② 양이 잠자는 바닥이 어는 추위'
12월 31일부터 시작해 해를 넘긴 다음 해 1월 8일까지 계속된다. 몽골인이 러시아에 발맞춰 축제로 즐기는 새해가 이 기간 동안에 들어 있다. 몽골인은 양을 우리에 넣어 재우지 않는다. 그런데 양의 체온으로도 녹이지 못할 추위라서 양이 잠자는 바닥이 언다는 것이다.
③ '세 살 된 황소의 뿔이 얼어 부러지는 추위'
1월 9일부터 1월 17일까지 지속된다. 이 기간에는 추위에 단련된 몽골인도 잘 나돌아 다니지 않을 정도로 추위가 대단하다.
④ '네 살 된 황소의 꼬리가 얼어 부러지는 추위'
1월 18일부터 1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이때가 겨울 추위의 절정이다. 몽골인이 가장 듬직하고 힘이 센 것으로 생각하는 네 살 된 황소의 꼬리가 얼어 부러진다고 과장할 만큼 지독한 추위가 엄습한다. 실제로는 그럴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소한 · 대한 추위 무렵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추위임에 틀림없다.
⑤ '땅에 버려진 낱알이 얼지 않는 추위’
1월 27일부터 2월 4일까지로 추위가 조금 누그러진다. 이때부터는땅에 떨어진 곡식의 종자가 얼어 죽지 않고 봄에 새싹을 틔운다고 한다. 최고 추위는 가셨다고 본다.
⑥ ‘길에 내린 눈이 일부는 얼고 일부는 녹은 상태의 추위'
2월 5일부터 13일까지인데 포장된 길의 눈이 조금씩 녹아 내린다고 한다. 입춘 무렵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봄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시기다. 그 영향으로 대륙의 안쪽 몽골에서도 훈기를 느낄 수 있다.
⑦ '구릉의 그늘에 눈이 쌓여 있는 추위’
2월 14일부터 2월 22일까지이며, 양지쪽에는 눈이 다 녹고 구릉의 그늘에만 눈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보편적인 상황이고 몽골 고원의 눈은 5월에도 그대로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면 5월에도 산야에서 쉽게 눈을 발견할 수 있다.
③ '길이 질척해지는 추위’
2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인데 사람들이 점차 살기 어려워지는 때다. 갈무리해 둔 겨울식량도 바닥나고 건조한 동남풍이 불어오기 시작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말려버린다. 메마른 땅만큼이나 사람들의 피부도 건조해지기 시작한다.
⑨ 일반적으로 따스해진다'
3월 4일부터 시작한 마지막 추위가 3월 12일에는 끝이 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가축이나 사람이 야외에서 활동하기에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우리는 ‘우수 경칩이 지나면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라고 말하지만 울란바토르를 흐르는 톨 강은 녹을 줄을 모른다. 이 가운데 가장 추운 날은 세번째와 네 번째 여스이다. 살아 있는 황소의 뿔과 꼬리가 얼어 부러질 정도라고 표현할 만큼 날씨가 매섭다. 몽골인은 매년 이런 추위를 경험해서인지 추위에 대해 별다른 겁을 내지 않는다. 단지 겨울에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매우 겁낸다. 바람이 불어오면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다.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진다. 이 정도가 되면 동사하기 직전이다. 머리가 아프다가 감각이 무뎌지면 얼른 아무곳에나 들어가 몸을 녹여야 한다.
몽골의 겨울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추위가 이어진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싸매고 다니지 않으면 동상에 걸릴 확률이 높고 심한 경우 숨쉬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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