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의 손님 대접은 극진하다. 손님이 오면 양을 잡아 신선한 고기를 대접하고 겔 중앙에 앉히며 잠자리도 주인과 함께 한다. 손님은 속말로 왕이며 최고로 대접받는다. 손님은 친척이나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몽골인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생각하면서 누구든지 집에 찾아온 손님을 늘 주인처럼 대접한다. 몽골인은 길을 떠나면 허허벌판에서 인가를 만나기 어려워 늘 고독하고 궂은 날씨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주인들은 손님을 반갑게 맞아들인다. 즉 손님을 자기의 분신처럼 위해 준다. 주인도 언젠가 길을 나서면 낯 모르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려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성서 구절을 몽골인은 스스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몽골인은 길을 가다 날이 저물면 아무 겔에나 찾아가 주인장에게 하룻밤 묵어 갈 것을 요청한다. 손님의 요청을 받은 주인은 웬만한 어려움이 아니면 대부분 묵어 갈 것을 허락한다. 만약 이를 거절하면 그 사회에서 배척을 당한다. 왕따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손님을 대접하지 않는 주인을 법으로도 제재했다. 하룻밤 숙박을 거절한 사람은 세 살된 암말 한 마리를 벌금으로 내놓아야 했다. 배고픈 나그네가 찾아왔을 때 아이락을 주지 않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양 한 마리를 내놓는 벌칙을 받아야 했다. 나그네의 말이 피곤해 달리기가 곤란하면 주인은 의무로 힘이 센 말로 교환해주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 인간존중을 손님 대접으로 가르친 것이다.
손님은 멀리 겔이 보이면 옷을 바르게 고쳐 입고 천막집 '겔'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주인을 부른다.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흥미롭다. 겔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거나 들어가도 되겠소" 라고 묻지 않는다. 가능하면 먼 거리에서 주인을 부른다.
손님은 겔에서 개를 키우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높여 “개를 불러들이시오”라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크게 헛기침을 하거나 혼자서 “날씨 참 좋다”, “풀이 참 잘 자라고 있구나”, “벌써 여름이로구나” 등 주인과 관계가 있든 없든 아무 말이나 중얼거린다. “밖에 사람이 왔소" 하고 안에다 알리는 말이다. 집안에 하인이 있든 없든 관계치 않고 “이리 오너라"라고 집안의 사람들에게 기별하던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꼭 우리 나라 TV 연속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무작정 집 가까이 다가가면 오해받기 쉽다. 최근에야 그런 일이 흔치 않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약탈하거나 습격하는 사람들이 많아 주인은 늘 신경을 썼기 때문에 약탈자가 아니라는 것을 멀리서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부터 사람이 다가간다는 것을 주인에게 알리려는 의미에서 인기척을 내야만 했다. 상호 오해에서 빚어질 수 있는 불상사를 막자는 것이다. 손님의 알리는 말을 들은 주인은 겔 안에서 옷을 차려 입고 모자를 쓰고 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유럽에서는 실내에서나 인사를 할 때는 모자를 벗지만 몽골인은 인사할 때는 꼭 모자를 쓴다. 모자를 쓰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면 예의가 아니다. 갓을 쓰지 않고 나가는 것을 엄청난 실례로 여기던 우리의 풍습과 닮은 점이 있다. 주인은 손님이 말에서 내리도록 도와주고 말을 '오야줄에 맨뒤 겔로 인도한다.
손님과의 안면 유무에 관계없이 장황한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적어도 5분은 넘는다. 손님은 겔의 정문에서 안쪽을 볼 때 약간 왼쪽, 주인의 오른쪽에 앉게 한다. 그리고는 여름은 아이락을, 봄·가을·겨울에는 수테 차(茶)를 권하며 우선 요기하고 한숨 돌리도록 유도해 나간다.
차는 반드시 두 손으로 손님에게 권한다.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받쳐 든다. 손님도 똑같은 방법으로 찻잔을 받아 든다. 이때 꼭 옷 소대를 내리고 서브하고 받는 것이 기본 예의다.
몽골에서는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물건을 주면 황급하게 소재를 풀어 내리고 두 손을 내밀어 받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팔뚝을 드러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맨살을 어른에게 보일 수 없다는 예의를 지킨다.
버선의 뒤꿈치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우리의 사대부 집안의 가르침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관습이다. 몽골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험악해 보일지 몰라도 예의를 차리는 면에서는 어느 민족에게도 하지지 않는다. 어른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은 너무 순박해 보인다. 메말라 가는 사회에서 살다온 외국인에게는 아름답게 보인다.
차와 동시에 손님에게 코담배를 권하며 다시 한번 인사말을 건넨다. 코담배는 담배가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해서 만든 것이다. 옥으로 만든 향수병만한 코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상대방에게 주면서 “여행길이 편했느냐"고 묻는 것을 시작으로 말문을 터나 간다. 그러나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며 무슨 일로 길을 나섰는질 묻지 않는다. 손님이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코담배를 상대방에게 줄 때도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 왼손으로 주고받으면 오히려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왼손은 불결하다고 생각해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꺼린다. 코담배 병을 건네줄 때는 뚜껑을 조금 열어 상대방이 꺼내기 쉽게 한 뒤 권한다.
코담배를 받아서는 뚜껑에 달린 홈이 파진 귀지 후비는 것 같은 작은 것으로 가루를 꺼내 엄지손톱에 바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들여마시며 냄새를 맡는다. 갑자기 훅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눈물, 콧물이 나와 창피를 당하기 쉽다.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자극적이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바퀴 죽 돌려가면서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난다. 코담배는 주인과 손님 모두가 교환, 한 차례씩 돌려가면서 사용한다. 코담배 통은 원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준다.
주고받는 인사말도 다양하다. 안녕하십니까(사인 바이 노)는 기본적인 인사말이며 '좋다'(사인)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영어의 화인(Fine)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 때 주의할 것은 아무리 상황이 나쁘고 몸이 불편하다고 해도 부정적인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몸이 아프거나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인사말을 주고받은 다음에 얘기를 꺼내야 한다.
이 인사말 이외에도 계절에 따라 “봄철 살기가 괜찮으냐”, “여름 지내기가 좋으냐” 등 계절마다 주고받는 인사말도 달라진다. 시골에서 주고받는 가축과 관련된 각종 인사말도 흥미롭다. "댁의 양이 평화롭게 풀을 잘 뜯고 있습니까?", 평화롭게 풀을 잘 뜯고 있습니까”, “양이 통통하게 살이 쪘습니까?
몽골어에서의 평화라는 표현은 기원이나 행복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 없다면 그것이 곧 평화이고 행복이라는 것이다. 들판이나 일터에서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기원이나 인사를 한다. 젖을 짜는 사람을 만나면 “젖이 그릇에 가득하겠어요” 라든가, 양털을 깎는 소녀에게는 “양털이 비단보다 더 곱다” 등 인사도 다양하다. 게임을 하는 가족을 만났다면 “골고루 한 번씩 사이좋게 이기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음력설에 손님을 만나면 인사가 더 요란스러워진다. 계절과 일년 행운, 가축의 다산, 가족의 화목 등이 거론된다.
어른을 만났을 때는 '고애’(씨)라고 존대어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푸레브잔찬 고래'라고 불러주면 흡족해한다. 또 단지 나이가 많아 보이면 '아하(형 또는 아저씨)라고 부른다.
몽골인은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다. 자연환경이 열악해 외부인을 쉽게 접할수 없었던 몽골인은 외국인을 반긴다. 외국인들은 외부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이며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선구자였다.
단 몽골인이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도시지역에 한정된 말이다. 지방을 여행할 때는 전통과 예절을 잘 알지 못하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배타적이고 관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것은 못된다. 외국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을 모든 몽골인은 잘 알고 있다.
몽골인은 손님에게는 새로 잡은 신선한 고기를 대접한다. 이 때도 격식을 차린다. 고기의 엉덩이, 갈비 등 각 부분 고기를 한 점씩 삶아 내놓는다. 끝으로 내장을 삶아 상에 올린다. 내장이 나오면 다 먹었다.
는 표시다. 우리나라 음식점에서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암소 한 마리' 등의 메뉴와 유사하다. 모든 부위의 고기를 조금씩 맛보이는 대접이 재치가 있어 보인다.
손님은 음식을 먹고 트림을 해야 한다. 포식했다는 표시다. 그리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흔히 일본인들의 인사를 두고 '한 번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려면 열 번은 허리를 굽혀야 한다'고 말하는데
몽골인은 이보다 더하다. 족히 10분이 넘을 시간을 할애, 주인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나타낸다. 형식이 참 많이 발달돼 있다. 아이락으로 거나해진 주인이 손님과 마음이 상통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주인은 손님의 술잔에 술을 채워 권한다. 손님은 술을 다마시는 것이 아니라 반쯤 마시고 주인에게 잔을 돌려주면 다시 술을 따라 다른 사람에게 잔을 돌린다. 주인은 손님들이 한 순배 돈 뒤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다.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인은 예부터 잔칫날에 귀한 손님이 오면 말고기를 먹었다. 말고기는 삶아서 고기로 먹을 뿐 다른 것으로 요리는 하지 않았다. 말고기의 맛은 지방질이 없어서 담백하고 고기 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 졸깃졸깃하다.
말고기는 그러나 비상식량의 의미가 더 강하다. 말은 육식용으로 사육하지 않는다. 운송수단으로 사용하다 늙어 수명이 다하면 잡아서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몽골 학자들은 그러나 이 말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몽골에 잠깐 머물렀던 중국사신에게는 이 기록이 사실처럼 보였다. 중국인이 몽골인과 함께 머물렀던 것은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두 민족이 화해하거나 화친을 위해 모인 자리뿐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몽골인은 늘 말을 잡아 잔치를 베풀어 중국인을 대접했다. 이걸 본 중국인은 몽골인이 잔치 때 말고기를 먹는다고 기록했다.
몽골인의 풍습은 손님이 오면 늘 새로 가축을 잡아 고기를 대접하는 것이 예의로 돼 있다. 먹던 고기가 아무리 많이 남아 있어도 손님이 집에 방문한 것을 영광으로 여겨 가축을 잡았다. 이런 전통에 따라 손님을 접대해야 하지만 전쟁판에서 가축을 구할 수 없었던 몽골인은 가장 구하기 쉬운 말을 잡아 잔칫상을 차렸던 것이다. 몽골의 풍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중국인은 이런 모습을 보고 말고기도 먹는 민족으로 기록했다. 이 말에는 몽골인이 미개하고 무식해 말고기를 먹는다는 투의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몽골인은 손님을 대접할 때 그들이 조심스럽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격적이고 거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몽골인은 종종 당황스러움과 거북함을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또 대부분의 몽골인이 과묵하고 말이 없으며 관용적이라고도 표현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신을 좋아한다고도 설명한다. 까다롭고 변덕스럽다고 묘사되지만 품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말들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몽골인은 그러나 경기를 할 때면 매우 흥분하고 화가 나면 펄펄 끓는다. 그래서 손님들은 불쾌한 말을 하지 않는다. 친구나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더더욱 금기시되고 있다. 문제를 야기시킬 말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마음이 언짢은 말을 할 때는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반면 칭찬과 호의는 과장될 정도로 크게 떠벌린다. 주인의 고향 자랑,주변 자연경관, 주인의 친절 등을 자랑하는 것을 들어주면 매우 좋아한다.
몽골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호의와 칭찬이 잘 발달돼 있고 운문(韻)文)으로 음유된다. 고대에는 축제나 잔치는 전통적으로 찬미와 칭찬으로 시작하고 끝났다.
손님들이 삼가야 할 일도 많다. 편안한 여행을 하려면 터부를 지켜주는 것이 좋다. 특히 난로와 겔에 대한 독특한 생활풍습을 지켜주는것이 필수적인 예의다.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어서는 안 된다. 칼이나 창으로 불을 젓는 것과 난로 불에 발을 쪼이는 것이 금기시된다. 난로를 타 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난로를 모독하는 것 같은 행동은 죄악시되며 주인을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유를 땅바닥에 쏟아도 안 된다. 겔 안에서 휘파람을 불고 겔의 기둥에 몸을 기대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징조로 받아들인다. 겔안에서 휘파람을 불면 겔 외부에 있던 불순 세력들이 침입해 온다는 옛 말 때문에 몽골인은 휘파람을 몹시 꺼린다. 우리 건물은 외부 공격으로부터 주인을 보호해 줄 수 있지만 겔은 보호 능력이 거의 없다. 나무와 천, 양털로 만든 벽가림 등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