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중해야할 주제 축적

몽골의 가을

 

 몽골의 가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고 일찍 왔다가 빠르게 가버린다. 몽골인은 '나담 다음에 가을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7월 11일부터 3일간 열리는 나담 축제가 끝나면 곧바로 가을이 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인 여름휴가도 시작되기 전에 가을이라고 말하니 영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낮에는 아직도 27, 28도를 오르내리는 때 가을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몽골에서 장기간 머무르지 않고는 말하기 힘들다. 몽골에 살아본 사람만이 몽골의 이른 가을을 말할 수 있을 만큼 몽골의 가을은 정말 특이하다. 몽골인은 준비를 서두르라는 뜻으로 여름 축제 후부터 가을을 입에 올린다.

 

 우리가 서울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가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싸늘하고 상쾌한 기온은 8월 중순이면 벌써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9월 초에는 시골에 벌써 첫눈이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때가 되면 몽골인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짧아지는 해가 겨울맞이를 재촉한다.

 

 몽골의 가을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추위부터 몰고 온다. 푸른 잎이 미처 단풍이 들기도 전에 추위부터 엄습해 오니 가을의 낭만은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다. 여름이 올 때는 거북이걸음으로 느려 터지지만 겨울은 황소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가로수의 잎이 무성한데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다. 거짓말을 더한다면 시시각각으로 기후가 변한다. 특이한 것은 나뭇잎이 단풍들 채비를 하기도 전에 말라서 떨어진다. 고운 단풍은 아예 없고 가지에서 바람을 못 이겨 떨어진 부스러기뿐이다. 시골에서는 겨울준비로 눈 코 뜰 새 없다. 가을 햇살을 이용해 다음 해 오뉴월까지 먹고 살아야 할 식량인 양고기를 비축해야만 한다. 김장을 담가 보관용 야채를 준비하듯 몽골인은 고기를 잡아 보관한다.

 

양을 잡아 비축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다. 거창하게 창고나 그릇에 담아 놓는 것이 아니라 야생짐승의 습격을 막을 수 있는 곳에다 잡은 양고기를 얼려 놓는 일이다. 많이 잡는 사람은 날을 정해 한꺼번에 1백여 마리의 양을 잡아 일부는 시장에 내다팔고 나머지는 쟁여 놓는다.

 

이렇게 가을에 양을 몰아 잡는 것은 한겨울에는 양을 잡을 수도 없고 잡아봐야 가을보다 살이 빠진 것들뿐이니 효율면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커다란 창고에 가득 양고기를 사 두었다가 겨울부터 내다팔아 재미를 보는 상인이 늘고 있다. 자유화 이후부터 크게 달라진 풍습이다.

 

 양 잡는 일과 관련된 민속을 알아보자. 우선 필요한 것이 칼이다. 

양 잡는 칼은 물론 부엌칼이 잘 들도록 갈아 날을 세워 놓는 것은 남자가 할 일이다. 여성들은 칼을 사용하는 일뿐이다. 무기는 남자만의 것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은 부엌 이외에서 칼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즉 무기를 드는 것이 금기로 되어 있다. 여성이 무기를 들면 목숨을 잃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여성이 목숨을 잃는 것을 몽골인은 원하지 않는다. 여성을 보호하여 종족의 대를 잇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 '칼은 곧 남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어느 집에 가서 칼이 들지 않으면 “이 집에 주인이 없느냐”라고 농담 삼아 말한다. 주인의 할 일중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여성들이 부엌에서 사용하는 칼날을 세워주는 일이다.

채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겨울에 먹을 채소를 지하 저장고에 제장 한다. 지하 30m의 깊이에 마련된 저장고에다 채소를 가득 넣고 입구를 보온이 가능한 천이나 스펀지 양가죽 등으로 덮는다. 2중3중이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란다. 4중5중으로 입구를 막아도 입구의 것은 얼어서 못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름 내내 걷어 두었던 이스끼를 겔에다 다시 두껍게 두르고 걷어올렸던 겔의 아랫부분을 내려 흙으로 바람구멍을 막는다.

 

 겨울을 보낼 집주위에는 가축 똥을 가능하면 많이 모아 놓는다. 여름내 주워 말린 똥을 모아 높은 뚝처럼 쌓아 바람막이 벽으로도 사용한다. 우리가 가을철 나뭇짐으로 겨울 땔감을 준비, 비축했다면 몽골에서는 가축똥으로 이를 대신한다.

이는 여성들의 할 일이다. 여성들이 야외에 나가 등짐을 져서 똥을 모아 오면 사내들은 집 주위에 담 형식으로 쌓아 갈무리하는 일이 고작이다. 여름에 말려 두었던 차강 이데도 봉지를 지어 잘 보관해 한에 먹어 없애지 않는다. 차곡차곡 정리하여 새해에 먹을 것을 따로 저장한다. 가을철 이사도 몽골인에게는 힘든 선택이다. 가을 겔 터를 고를 때는 추위를 피하고 가축을 먹일 풀이 있는 곳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또 한겨울 눈이 아무리 와도 바람에 날아가는 곳이어야 한다.

한겨울 추위를 나기 위해서는 바람이 없고 햇볕이 따스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온도만을 고려하다 보면 가축이 겨우내 먹고 살 풀이 많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볕이 웬만큼 들고 바람이 없고 풀이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그곳을 가을철 주거지로 택한다.

사람과 가축이 겨울을 나기에 무난한 곳이다. 그런 곳은 대부분 약간 비탈지고 뒤에 큰 산이나 구릉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년 같은 장소가 선택된다.

 

 겨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길을 나선 사람들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구릉의 앞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그런 곳에 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에 본능처럼 찾아든다.

 

 몽골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개념은 없고 기나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몽골인의 강인함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는 가을을 지나면서 터득하는 생활의 습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